[아침편지] 주고 받는 술잔 위의 철학

조용한 일식집이었다.
은은한 조명이 잔 위에 내려앉아 작은 달빛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지방경찰청장을 지낸 월백과
기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사실 이 만남은 기자가 청한 자리였다.
그러나 월백은 조용히 지폐 두 장을 서비스료로 건넸고
계산 또한 그가 미리 마쳤다.
상대의 주머니까지 헤아리는 그 작은 행동은
이미 한 인간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격이란 계급이나 권위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려와 격조에서 드러난다.
잔이 오가던 중
월백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사람은 물도 마시고 술도 마시지요.
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물은 목이 말라서 자신의 필요 때문에 마십니다.
그러나 술은 다릅니다.
술은 상대를 위해 마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잔을 기울이는 것이지요.”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술에는 눈물도 있습니다.
슬픔도 있습니다.
건네는 술잔에는 누군가의 슬픔을 달래고
마음을 나누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의 말에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용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세상의 술자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란 해지고
생각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는 달랐다.
잔이 오갈수록 대화는 차분해졌고
이야기는 점점 깊어졌다.
그날의 술자리는 마음의 벽을 낮추고 생각을 맑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기자는 깨달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철학이 오가는 자리라는 것을.
월백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는 슬픔이 아니라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이라면 그 술은 이미 좋은 술입니다.”
기자는 생각했다.
오가는 술잔은 사람의 품격이었다.
배려에서 드러나는 윤리,
행동에서 드러나는 인격,
삶에서 우러나는 신뢰. 그것이 바로
한 인간의 에토스적 삶이다.
그날의 술자리는 소란한 자리가 아니었다.
잔 위에서 마음이 흐르고
삶의 철학이 조용히 빛나던 자리였다.
사람이 깊어지면
술자리도 깊어진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오가는 술잔 속에서
조용한 철학이 되어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