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우리는 왜 싸움을 끝내지 못하는가

고대 그리스에서 혈육간 피의 복수가 이어졌다.
죽이고, 다시 죽이고, 이 죽음들은 또 다른 죽을을 불렀다.
모두에게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옳다는 확신이 서로를 향한 칼날이 되어 남은 것은 정의가 아닌 비극으로 돌아왔다.
2500년 전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에서 이 오래된 인간의 모습을 무대에 올렸다.
이 이야기는 복수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이르러 복수는 판단의 자리로 옮겨간다.
서로를 겨누던 칼날은 상대의 말을 듣는 자리로, 복수는
판단의 질서로 바뀐다.
칼에서 대화로 복수에서 판단으로 옮겨간 것이다.
어쩌면 문명의 진보란 더 강한 힘을 갖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진 힘을 남용하지 않고 상대를 함께 살아갈 공동운명체로 여기는 지혜가 필요했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생각이 다르면 편이 갈리고, 갈등이 시작되면 상대의 약점을 찾는다. 공격은 반격을 부르고,
반격은 다시 더 큰 공격의 이유가 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는 물론 정치게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갈등을 대하는 태도와 해결하는 방법.
생각과 환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한 갈등은 필연이된다.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폭력과 보복이 아닌 대화를 통한 이해와 보복아닌 판단으로 풀어가는 절차적 힘이 아닐까.
여기에 인문학의 역할이 있다.
인문학은 정답을 찾아주는 학문이 아니다.
고대이후 인간이 겪어온 실패와 고통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다.
우리는 놀라운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방대한 지식을 찾아낸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2500년 전 무대 위에서 인간은 복수의 칼을 내려놓는 지혜가 피어났다.
오늘 우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와 비교도지 않는 강력한 기술과 풍요를 손에 넣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만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진화했는가?
고려대학교 정책포럼공동대표의장,
한.중 경제통상진흥원 서울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