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편지

[철학의 산책] 갈등을 넘어, 사람을 보다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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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세상의 상처를 열심히 기록해 왔지만, 상처를 어루만지는 글은 오래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월백과 두견의 대화

 

"두견, 요즘은 어떤 글을 가장 많이 쓰고 있습니까?"

"재개발 현장의 갈등과 부조리의 취재 요청이 많습니다.  

억울한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력의 횡포에 맞서며,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서 보람입니다. 

 

월백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일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두견이 처음 펜을 들었던 이유가 고발은 아니었습니다." 

두견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월백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기억하십니까?  

실수 위에 피는 꽃

갈등을 넘어'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살랑살랑, 바람이 되어를."

그 순간 두견은 오래된 원고철이 마음가운데 펼쳐지고 있었다. 

 

잊고 있던 질문들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언론의 역할을 감시와 비판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불의를 고발하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세상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갈등을 기록하는 것과, 갈등을 넘어서는 길을 묻는 것 또한 다른 일이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갈등 속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재개발 현장도 갈등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이기려 하고,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려 하며,
대화하기보다 편을 가르려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사람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탐사보도와 철학의 산책

 

나는 재개발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수많은 제도적 모순과,  법의 사각지대와, 공공의 책임 회피를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분노할 일이 있었고  실망할 일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게 된다. 

문제의 시작은 제도일 수 있지만,
문제의 끝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좋은 법이 있어도 사람이 무너지면 갈등은 깊어진다. 

좋은 제도가 있어도 신뢰가 사라지면 공동체는 흔들린다.

그래서 탐사 보도가 세상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라면,
철학은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볼 것 인가를 묻는 일이다.

탐사 보도가 진실을 밝히는 등불이라면,
철학은 그 진실을 품고 어디로 걸어갈 것 인가를 묻는 나침반이다.

 

도시를 살리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삶의 흔적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도시를 살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효율보다 신뢰를,
속도보다 공정을,
승리보다 공존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다시, 철학의 산책길에서

 

월백을 통해 나는 깨닫는다. 

그동안 세상의 상처를 열심히 기록해 왔지만,
정작 상처를 어루만지는 글은 오래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이 산책길의 문을 연다.

갈등을 넘어 사람을 보기 위해.

비판을 넘어 성찰을  위해.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월백의 마지막 말

 

"두견, 세상을 바꾸는 글을 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잃지 마십시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권력도, 화려한 논리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이 필요한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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