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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만남 — 건설인가, 파괴인가!
오피니언

너와 나의 만남 — 건설인가, 파괴인가!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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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가만히 머물면 잿빛 물결 힘을 합하면 길이 열리고 역사가 바뀐다 스승의 사상이 제자의 삶으로 서로의 배려가 세상을 바꾸듯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희망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최종엽 대표기자 

역사는 강물과 같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물길을 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 한 사상과 또 다른 사상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만남이 서로를 깊이 파고들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문명의 지형을 바꾸고, 때로는 새로운 시대를 연다. 인류사에 남은 위대한 만남들은 단순한 개인 간 우연이 아니라, 삶을 바꾸고 역사를 전진시키는 힘을 증명한다.

 

서양 철학의 꽃을 피운 만남

 

서양 철학의 뿌리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성찰에서 시작된다. 그는 끊임없이 묻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사유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그의 철학이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제자 플라톤 덕분이다. 플라톤은 스승의 대화를 기록하고 자신의 사유를 덧붙여 체계적인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만약 플라톤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구전으로 흩어져 사라졌을지 모른다. 이 만남은 ‘스승의 통찰이 제자의 손을 거쳐 체계와 이론으로 승화 될 때,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다움의 길: 공자와 안회

 

동양에서도 비슷한 만남이 있었다. 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가난 속에서도 학문을 즐겼고, 스승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했다. 공자는 그를 두고 “한 바구니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에도 즐거워하는 자”라 하며 진정한 학문의 제자라 칭송했다. 공자의 인 중심 사상이 후대로 전해진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한 안회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 만남은 ‘가르침이 제자의 인격과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때, 사상은 인간 다운 길로 확장된다’는 교훈을 전한다.

 

역사적 퇴행: 헤겔과 마르크스

 

헤겔은 변증의 과정이 역사를 진보 시킨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제자 마르크스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그는 역사의 원동력을 정신이 아니라 물질, 사상보다 경제적 토대로 해석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은 거꾸로 서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바로 세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전복은 20세기 역사에서 거대한 이념적 대립과 비극을 낳았다. 이 만남은 ‘사상이 삶을 지배하는 순간, 발전이 아닌 퇴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남겼다.

 

만남을 열어가는 길

 

어떤 만남은 역사를 진보시키고, 또 어떤 만남은 역사를 왜곡한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의 삶을 북돋우는 만남은 역사를 키운다. 그러나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만남은 결국 파괴로 귀결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도시가 새로워지는 것도,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는 것도, 개인이 성장하는 것도 결국 만남의 방식에 달려 있다. 서로를 도구로 삼는 만남은 삶을 삭막하게 만들지만, 배움과 존중 속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역사는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만남은 역사를 만든다. 만남은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만남이 미래를 만든다. 우리는 어떤 만남을 선택할 것인가.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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