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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인문 칼럼 2부작] 찢겨진 가족, 노을빛 치마에 맺힌 한(恨)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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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첩(霞帔帖)』의 기적 뒤에 가려진 200년 전 신유박해의 비극과 오늘
최종엽 기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한가위다. 이 풍요의 계절에  문득 200여 년 전 한 가족의 처연한 밥상을 떠올린다.

 

남편은 남쪽 끝 유배지에 갇혔고, 형제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절해고도로 쫓겨났으며, 남겨진 처자식은 차가운 냉대 속에 숨 죽여 울어야 했던 실학의 거두 다산 정약용 일가의 이야기다.

 

파지 수레에서 살아 돌아온 보물

이글은 2005년, 수원의 한 모텔 마당에서 시작된다. 폐지를 줍던 할머니의 낡은 손수레에 빛바랜 서책 하나가 실려 있었다. 모텔 주인이 눈여겨보지 않고 파지와 맞바꾸지 않았더라면, 잿더미로 사라졌을 200여 년 전 강진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이 남긴 하피첩(霞帔帖)』이야기다.

 

훗날 국보급 보물(제1683-2호)로 지정된 이 서책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유려한 필체 때문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남양주 마재 마을에 홀로 남겨진 아내 풍산 홍씨가 남편의 유배 10년째 되던 해, 천 리 길을 넘어 유배지로 보낸 낡은 비단 치마의 사연이었다. 

 

30여 년 전, 꽃다운 나이에 다산에게 시집오며 입었던 붉은 다홍치마, 모진 풍파와 통한의 눈물 속에 붉은빛은 간데없고 노을빛(霞)바랜 치마폭을 받아 든 다산은 가위로 천을 마름질해 두 아들에게 삶의 뼈아픈 훈시를 적었다. 

신유박해로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형제들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진 비극 속에서, 다산은 남겨진 조카들과 친족들을 내 친자식처럼 품고 서로 의지해야만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두 아들에게 절절하게 당부한 대목.

세상은 이를 ‘눈물겨운 부부애’와 ‘애틋한 가족애’라는 아름다운 서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낡은 명주 천 사연에는  조선조 권력의 무도함이 남긴 피비린내와, 국가폭력에 의해 산산조각 난 한 가문의 처절한 비극이 핏자국처럼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신유박해, 한가위 보름달을 잃어버린 사람들

1800년, 다산을 아끼던 개혁 군주 정조가 의문의 급사를 맞이했다. 왕의 숨이 멎기 무섭게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801년 터진 신유사옥(辛酉邪獄)이다.

 

권력자들의 명분은 ‘사학(邪學, 천주교) 척결’이었다. 그러나 칼끝이 향한 진짜 과녁은 정조를 보좌하며 새로운 조선을 열고자 했던 남인파의 숨통이었다. 종교적 이견은 정적을 합법적으로 도륙하기 위한 가장 잔인한 덫에 불과했다.

 

칼날은 다산의 집안을 정면으로 내리쳤다. 셋째 형 정약종은 서소문 밖 형장에서 목이 베였다.

  • 매부 이승훈은 참수당했고, 조카사위 황사영은 거열형을 당해 사지가 찢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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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라는 절해고도로 내쳐져 다시 육지를 밟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 또한 혹독한 국청 고문 끝에 뼈마디가 부서진 채 머나먼 강진으로 끌려갔다. 하룻밤 사이에 촉망받던 가문은 공중분해 되었다. 조선 사회에서 이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단순한 유배가 아니었다. 멸문지화(滅門之禍),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가해진 ‘폐족(廢族)’이라는 사회적 사형선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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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 마을 다산 생가는 적막과 공포만이 감도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대문 밖에는 감시의 눈길이 번뜩였고, 이웃과 친척들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 담장 너머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30년 세월을 넘어로 다가온 '노을빛 치마'의 무게

다산이 차디찬 골방에서 10년의 세월을 곰삭히는 동안, 고향에 남겨진 아내의 삶은 남편 못지않은 극형이었다. 

가문은 죄인의 집안으로 낙인찍혔고, 살림은 거덜 났으며, 두 아들은 과거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처지에서 사회적 낭인으로 전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부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남편을 원망하며 주저앉을 수도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가재도구를 저잣거리에 내다 팔며 한탄 속에 삶을 탕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 홍씨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가장 빛나던 날을 꺼냈다. 

신혼의 설렘과 가문의 영광을 약속했던 그 붉은 혼례 치마. 아내는 그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권력의 칼날이 우리를 짓밟고 가족을 찢어놓았지만, 당신과 내가 맺었던 첫 약속은 아직 바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부디 절망의 늪에서 무너지지 마십시오.”

 

말 없는 아내의 전갈을 펼쳐 든 쉰 살 다산은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붉던 빛깔이 흙빛 노을색으로 탈색되기까지 아내가 견뎌냈을 고초와 외로움이 그 천 위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핍의 자리에서 피어난 인간의 품격

다산은 아내의 치마폭을 자르고 또 잘랐다. 그리고 벼슬길이 막혀 냉소와 분노에 젖어 있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를 위해 먹을 갈았다.

“내가 너희에게 물려줄 토지 한 뙈기 없으나, 평생을 써도 다 닳지 않을 두 글자의 보물(神符)을 주노니, 하나는 부지런함(勤)이요, 다른 하나는 검소함(儉)이다.”

 

다산은 폐족이라는 굴레에 갇혀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라고 엄히 꾸짖었다. 과거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껍데기뿐인 출세의 학문을 벗어던지고, 인간 본연의 존엄과 실천적 학문(實學)에 매진하라고 타일렀다. 

翩翩飛鳥 (편편비조)息我庭梅 (식아정매)有烈其芳 (유열기방)惠然其來 (혜연기래)爰止爰棲 (원지원서)樂爾家室 (낙이가실)華之旣榮 (화지기영)賓則有實 (빈칙유실)嘉慶十八年 癸酉 七月十四日 洌水날아가던 새 두 마리가 우리 집 뜰 매화나무에 내려앉았네. 그윽한 꽃향기에 이끌려 찾아왔겠지.  여기에 보금자리를 틀고 화목한 집안을 이루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머잖아 탐스러운 열매도 맺히겠지. 

남은 치마 자투리로는 만개한 매화 가지 위에 다정하게 앉은 새를 그려(매조도), 시집가는 외동딸에게 아비의 미안함 담아 축복을 건넸다.

 

권력은 그들의 육신을 찢어놓고 가문을 난도질 했지만 낡은 치마폭 위에 새겨진 다산 가족의 품격과 사랑까지는 결코 빼앗지 못했다. 

 

첫 번째 질문을 남기며

모두가 둥근 달을 바라보며 가족의 평안을 비는 오늘, 하피첩의 빛바랜 노을빛은 우리에게 묻는다. 풍요로운 명절의 상차림 뒤에 가려진, 부당한 권력과 힘의 논리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흩어진 억울함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산 가문의 비극은 박제된 200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늘 속에서도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재현되는 현실입니다.

강자가 쳐놓은 무도한 그물에 걸려 한 인간의 삶과 가정이 산산조각 났을 때, 말문이 막혀버린 ‘억울함’은 대체 역사의 어느 골짜기에서 위로받아야 할까.

 

추석특집 인문 칼럼  제2편: '보름달 아래 묻는다 — 권력의 칼날과 억울함의 행방'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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