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명진칼럼]백비(白碑) 앞에서 삶을 조망한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빈손으로 이땅에 태어나 손에 쥔 것은 조금 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얻은 것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돈을 얻느라 사람을 잃지는 않았는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 가족의 따뜻한 얼굴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조금 더 오르려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는 않았는지를.
젊어서는 성공이란 많이 갖고 남보다 더 높이 오르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타인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달려왔다.
이제 흰머리를 이고서야 질문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공직의 문턱에서 지나온 족적을 검증받는 모습을 본다.
화려한 경력 뒤에는 뒤엉킨 흔적들를 만난다.
그러나 타인의 허물을 바라보다 문득 질문이 나를 향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 질문 끝에서 백비(白碑)를 떠올린다.
조선 중기의 문신 박수량(1491~1554)의 묘소 앞에는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비석이 서 있다. 그는 높은 벼슬을 지냈지만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묘비에는 이름도, 벼슬도, 공적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 흔적없는 백비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백비의 역설이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재산을 쌓고, 지위를 얻고, 이름을 남기려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소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유는 ‘얼마를 가졌는가’를 묻지만, 존재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백비에는 소유 기록이 없다. 대신 삶의 영롱한 흔적이 남아 있다. 비움의 충만이다.
다시 내 삶을 돌아본다.
돈도 필요했고 명예도 좋았다. 더 나은 삶을 원했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질문하나가 나를 향한다.
어느 순간 수단과 목적의 자리부뀜은 없었는지,
삶을 위해 돈을 벌었는데 돈을 위해 삶을 소비하고
사람을 위해 만든 자리가 사람 위에 군림한다면 주인과 종의 자리는 뒤바뀐 것이다.
돈을 소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돈이 나를 소유한다.
욕망도 그렇다. 하나를 채우면 또 하나의 빈자리가 보인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높이 올르는 가운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욕망 앞에서 멈출 줄 아는 것,
그리고 스스로 ‘여기까지’라 한계를 짓는것 이 또한 자유의 영역이 아닐까.
백비는 말이 없다.
그러나 빈손으로 태어나 채워가는 삶속에서 무엇을 지켰는가.
얼마나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잃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양심을 지켰는지.
사람을 지켰는지.
약속을 지켰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켰는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백비 하나가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 백비에는 우리의 삶가운데 수많은 말과 행동, 이해관계 앞에서 내가 취했던 선택,
그리고 사람을 대하던 마음들이 백비에 어른 거린다.
이 비문은 돈으로 쓸 수 없고 권력으로 고쳐 새길수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소유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지켰는가로 기억된다.
생의 석양에서 백비를 만났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지켜왔는가.
그리고 남은 나의 삶에서, 무엇을 지켜 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