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

기획 연재: 지역주택조합 잔혹사 ②]

최종엽 대표기자
입력
서민의 '내 집 마련' 자조 모델, 규제 공백 속 각축장으로 변질되다 (2000년대~2013년)

2000년대 판교·동탄 등 2기 신도시 청약 열풍으로 분양가가 치솟자, 내 집 마련이 절박해진 무주택 서민 앞에 1980년대 태동했던 지역주택조합(지주택)이 ‘원가 공급형 공동구매’ 간판을 달고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도시 환경의 급변과 제도의 사각지대는 순수한 자조 모델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시켰다.

 

외곽 나대지 고갈과 대행사 의존 구조

초기 지주택은 권리관계가 단순한 도시 외곽 농지나 임야가 풍부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 팽창으로 값싼 대규모 토지가 고갈되자 부지 매입 난이도는 급상승했다. 

 

생업에 바쁜 조합원이 복잡한 권리관계를 직접 풀기란 불가능했고, 이 틈을 타고 전문 기획 주체인 ‘업무대행사’가 전면에 나섰다. 사업의 최종 책임은 조합원이 지지만, 실질적 집행 권한은 법적 안전장치가 없던 일부 대행사에 집중되는 비대칭 구조가 굳어졌다.

 

‘깜깜이 모집’과 과장된 청사진

당시 주택법은 사전 신고나 공적 검증 의무가 없어, 임의 단체인 추진위 단계에서도 무제한 조합원 모집과 자금 수납이 가능했다. 홍보관마다 소유권 확보가 불가능한 단순 ‘토지사용승낙서’를 두고 "토지 확보 90%"라 홍보했고, 단순 의향서 단계임에도 대형 시공사 브랜드를 내걸었다. 총회 의결이 없어 사후 법원에서 무효로 판결 난 ‘안심보장증서’까지 남발되며 서민들의 종잣돈을 끌어모았다.

 

신탁 사각지대와 매몰비용 전가

에스크로(자금관리) 규정도 취약해 걷힌 자금은 토지 매입보다 과도한 홍보비와 불투명한 용역비로 먼저 소진되었다. 사업이 좌초되면 수백억 원의 매몰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원 빚으로 남았고, 일부 기획 세력은 법적 책임 없이 발을 뺐다. "위험은 조합원이 지고, 수수료는 사업 주체가 선취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된 채 2013년 정비구역 해제가 본격화되자, 이들의 시선은 마침내 도심 노후 주거지로 향하게 된다.

 

[다음 편 예고]

제3편: 도심 침투기(2014년~2016년) — 뉴타운 출구전략과 ‘지주 조합원’이라는 덫

뉴타운 해제 구역의 빈틈과 완화된 주택법을 파고든 지주택이 어떻게 평생 터전을 지켜온 원주민들의 땅을 겨냥했는지, 그 교묘한 침투 방식을 추적합니다.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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