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사유] 중.일 갈등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갈등은 언제나 ‘경계’에서 시작된다.
중국과 일본의 출돌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역사, 영토, 경제, 군사 등 이유는 많았고, 감정의 골은 깊다. 하지만 본질은 갈등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세가 문제다.
대만 문제를 놓고 벌이는 중국과 일본 사이 에 한국이 있다. 한쪽은 거대한 시장이고, 다른 쪽은 오랜 기술 파트너다. 중국은 시장이고 일본은 미국과 연동된 안보의 축이다. 이쯤 되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선택은 순간이다. 그러나 결과는 엄중하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어정쩡한 태도는 책임도, 설명도 쉽다. 위기의 순간에는 이런 단순함이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선택에는 조건이 따른다. 한 손을 잡는 순간, 다른 손은 놓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문제는 이 절연(絶緣)이 당장은 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데미지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선택의 순간보다, 선택 이후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균형은 모호함이 아니라 인내다
균형은 종종 오해받는다. 우유부단, 눈치 보기, 회피. 그러나 균형은 가장 고도의 판단을 요구한다. 바람의 방향, 힘의 논리, 미래의 결과를 동시에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균형은 양자(兩者)를 만족시키려는 기술이 아니다. 그 중심에 원칙을 세우고, 원칙을 버티는 태도다. 좌나 우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오래 참고, 더 깊이 숙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균형 외교는 위험하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어두운 결정의 공간
뉴스는 밝은 장면을 비춘다. 정상회담, 공동성명, 악수하는 사진들. 그러나 진짜 결정은 뉴스의 사각지대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보복’이라는 단어가 조용히 오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어두운 공간에서 계산은 손익과 안정, 그리고 반응이다, 그러나 타산으로 이루어진 선택은 대부분 호흡이 짧다.
인생이 그렇듯, 국가의 선택도 시간 앞에서 시험을 받는다.
원칙은 이익보다 느리지만, 더 멀리 간다,
여기서 우리는 한 단계 더 깊은 질문 앞에 선다.
이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이 선택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기억되게 하는가.
타산은 오늘을 살리지만, 원칙은 시간을 건넌다.
원칙이란 결국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형이상학(본질)적 결심에 가깝다. 국가도 얼굴을 가진다. 그 얼굴은 말보다 선택에서 드러난다.
국가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이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일 갈등과 한국의 선택이라는 문제는,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 있다. 직장에서, 관계 속에서, 삶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늘 비슷한 고민을 한다. 당장 편한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지킬 것인가. 이것이 전략의 기준이 되어야 미래가 있다.
선택의 본질은 시간을 향한다
선택에는 분명한 본질이 있다. 그 본질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타산은 코앞을 본다. 당장의 이익과 안정을 계산한다. 반면 형이상학적 선택은 시간을 넓힌다. 이 선택이 내일을 보장하는가, 먼 훗날 역사는 우리의 선택을 냉정하게 써갈 것이다.
국가의 선택이나 인생의 선택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판단한 선택이 필요하다. 역사는 효율을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는 원칙적 선택만을 기억한다. 그래서 본질적인 선택은 느리고 무겁다. 때로는 불리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선택만이 미래를 보장한다. 인생은 짧으나 역사를 길다.
중.일 갈등 앞에서 한국의 선택은 이렇게 정리된다.
우리는 지금 코앞의 이익을 위한 선택인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하고 있는가!
국가도 사람도, 이런 질문에 기준을 둔 선택이 비로소 위대한 역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