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제학 제3편] 보이지 않는 자산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다.
지휘자는 세계적인 거장이었고, 연주자들은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
악기와 악보도 완벽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난 공연장은 이상 하리 만큼 조용했다.
박수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 채 공연장을 떠났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누군가는 지휘를 탓했고, 누군가는 연주를 탓했다. 또 다른 이는 악기와 선곡을 문제 삼았다.
그때 한 노(老) 음악가가 조용히 말했다.
악기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한마디는 공연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도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
공동체는 무엇으로 하나 되는가.
보이지 않는 자산, 우리는 자산이라고 하면 먼저 돈을 떠올린다.
토지와 건물, 주식과 예금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공동체를 움직이는 가장 큰 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뢰. 존중. 질문. 경청. 배려. 협력.
이것들은 어느 회계장부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눈에 보이는 자산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좋은 연주가 악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듯, 건강한 공동체도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질문이 무시되면 대화가 멈춘다.
대화가 멈추면 설명보다 추측이 앞서고, 사실보다 소문이 퍼진다.
신뢰는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은 감정을 키운다.
감정은 사람을 설득하지 않는다.
사람을 갈라놓는다.
보이지 않는 균열
공동체는 거대한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답하지 않은 질문 하나,
무심히 지나친 말 한마디,
외면당한 작은 목소리가 균열의 시작이 된다.
작은 개미굴이 끝내 제방을 무너뜨리듯, 작은 균열은 시간이 흐르며 공동체 전체로 번져 간다.
존중은 존중을 낳지만, 무시는 반발을 낳는다.
경청은 신뢰를 키우지만, 독선은 저항을 키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같은 목적을 향해 걷는 동료가 아니라 서로 다른 편이 된다.
갈등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감정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감정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또 다른 감정을 낳고 갈등을 키운다.
불신은 협력을 무너뜨리고, 희망마저 갉아먹는다.
갈등은 언제 경제가 되는가
사람들은 갈등이 생기면 돈부터 걱정한다.
그러나 돈은 가장 마지막에 움직인다.
먼저 신뢰가 흔들린다.
신뢰를 잃으면 협력이 약해진다.
협력이 약해지면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의사결정이 늦어지면 기회를 잃는다.
기회를 잃으면 비용이 늘어난다.
비용이 늘어나면 공동의 자산은 줄어든다.
갈등은 바로 이 순간 경제가 된다.
우리는 흔히 경제를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경제는 돈보다 먼저 신뢰에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튼튼한 공동체는 갈등이 있어도 다시 일어선다.
반대로 그 자산을 잃은 공동체는 같은 사람, 같은 제도, 같은 돈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좋은 오케스트라는 뛰어난 연주자가 많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소리를 끝까지 듣는 사람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된다.
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질문은 공동체를 흔드는 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박자를 맞추는 첫 음이다.
그 첫 음을 외면하는 순간 음악은 소음으로 변하고, 공동체는 갈등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의 공동체에는 박수가 울리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의 소리만 커진 채, 정작 함께 만들어야 할 음악은 사라지고 있는가.
갈등경제학은 돈의 흐름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자산이 어떻게 경제적 가치를 만들고, 또 어떻게 공동의 자산을 잃게 하는지를 탐구하는 새로운 경제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