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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인문철학, 2부] 하피첩의 뒷면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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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의 피바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서늘한 질문

『하피첩』을 다시 펼친다. 빛바랜 붉은 치마. 다산 정약용은 천리 밖 아내가 보낸 그 치맛자락을 잘라 자식들에게 교훈과 사랑을 남겼다. 

1부에서 그 애틋함을 보았다면,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왜 한 가문을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았는가. 치맛자락 이면에 서린 서늘한 칼날을 들여다본다.

 

방파제가 무너지자 시작된 광풍

1799년 남인의 영수 채제공이 눈을 감았고, 이듬해 탕평을 이끌던 정조마저 승하했다. 11세 순조가 즉위하자 권력은 노론 벽파의 손으로 넘어갔다. 방파제는 사라졌고, 이어진 1801년(신유년) 조선은 피바람에 휩싸였다.

 

표면적인 명분은 '사학(邪學, 천주교) 척결'이었다. 조상 제사를 폐했다는 '무부무군(無父無君, 부모도 임금도 없다)'의 죄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본질은 정적을 뿌리 뽑기 위한 피의 숙청이었다.

 

다섯 집을 묶어 서로를 감시하게 한 오가작통법이 가동됐다.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는 공포 속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갔다. 셋째 형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고,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쫓겨갔다. 정약용 역시 경상도 장기를 거쳐 전라도 강진의 유배지로 밀려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채제공조차 무덤에서 불려 나와 관작을 박탈당했다. 여러 가문 전체가 도륙 난 참혹한 멸문지화의 시도였다.

 

인간을 지우는 일은 '낙인'에서 시작된다

권력은 사람의 목숨만 앗아간 것이 아니었다. 이웃 간의 신뢰와 공동체마저 파괴했다. 어제까지 정을 나누던 사람이 언제 나를 고발할지 모르는 공포. 그 속에서 무너진 것은 한 집안만이 아니었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일은 언제나 칼보다 먼저 '언어'에서 시작된다. '사학', '역적', '위험분자'. 낙인이 찍히는 순간 어떤 설명도, 반론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실체는 사라지고 오명만 남는다. 그렇게 상대를 악마화한 뒤에야 잔인 무도한 칼날의 피를 씻는다. 

 

다시 하피첩, 200년 뒤의 질문

『하피첩』의 붉은 천이 다르게 보인다. 그 비단 천 위에는 다산의 글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참수당한 형의 피, 돌아오지 못한 둘째 형의 한 맺힌 절규, 생이별한 가족의 눈물이 배어 있다.

200여 년이 흐른 오늘, 기자가 『하피첩』을 펼친 까닭은 옛 권력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춰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진영 논리와 사적인 감정이 진실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를 낙인을 찍어버리고, 그 틀에 맞춰 사람을 매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책장을 덮으며 남는 질문은 하나다. 

"상대를 지우고 배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1801년의 역사가 남긴 이 서늘한 물음은, 오늘날 정치판과 

갈등으로 쪼개진 재개발 현장과  우리 사회 한가운데서 여전히 유효하다.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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