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를 잃어버린 시대, 호암의 ‘무거운 신의’를 생각한다.

약속은 가벼워지고 신의는 상황 논리에 밀려났다. 정치는 득실에 따라 원칙을 뒤집고, 경제는 눈앞의 실적 앞에서 오랜 동반자를 털어낸다. ‘실용과 편의’라는 명분 뒤로 철학이 실종된 오늘, 왜 반세기 전 한 기업가의 완고한 발자취가 사무치게 떠오르는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을 관통한 화두는 명료했다. 나라를 이롭게 하는 기업, 사람을 으뜸으로 여기는 경영, 그리고 “의심 품은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맡겼으면 끝까지 믿는다”는 원칙이었다. 이 거창한 구호들을 떠받친 주춧돌은 다름 아닌 ‘작은 약속에 대한 결벽증적인 신의’였다.
호암에게 신용은 타협할 수 없는 자본이었다. 결제 기일을 어기지 않았고, 상대가 누구든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처세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계약에 대한 경외이자 철학을 지키려 감수한 불편함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편의를 위해 신의를 버리고 실용을 핑계로 본질을 뭉갠다. 약속을 지키면 미련하다 혀를 차고, 말을 바꾸며 잇속을 챙겨야 유능함으로 대접받는다.
영악한 계산만으로는 결코 역사를 쓰지 못한다. 1983년 칠순을 넘겨 결행한 ‘도쿄 선언(반도체 진출)’은 승부욕이 아니었다. 국가의 미래를 열겠다는 신념과 인재에 대한 신뢰가 빚어낸 결단이었다. 노동자의 처우부터 살피고 협력업체를 동반자로 대했던 혜안 역시, 각자도생의 풍토에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철학이 거세된 실용은 교활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카멜레온의 생존술로는 한 시대를 지탱하는 뼈대를 세울 수 없다.
호암이 고집스럽게 붙들었던 신의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율적 구속’이었으며, 타인을 향한 지극한 경외였다. 모든 것이 가벼워져 부유하는 지금, 우리가 다시 호암의 그 무겁고 둔중한 신의의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