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편지

[꽁트] 죽음의 소유권

최종엽 대표기자
입력
수정
그는 죽으려 했으나 죽지 못했다. 마지막 수류탄이 없었고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아니, 죽음이 그를 멀리 했다.
   본지 발행인 

그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환이 그에게 속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의 차가운 쇠침대 아래

그는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이 손은 누구의 것인가.

손목에서 뛰는 고동은 또 누구의 것인가?

 

총을 들고 전장에 섰을 때, 그의 생각은

나는 수령의 전사다.”

그 문장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다. 의심은 사치였고, 사치는 죄였다.

 

그의 삶에서 존재란 스스로의 것이 아닌 수령에 조종당하는 로봇이었다.

그는 한 인간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담보한 조건부 계약서였다.

어린 시절,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배운 적이 없다.

대신 너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뇌되었다.

 

존재는 소유의 문제였다.

수령은 그를 소유했고, 가족은 그에게 저당 잡혀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인식은 허락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진리는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읽혀지는 것이었다.

그의 세계에서 인식은 창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그 거울은 언제나 같은 얼굴, 같은 초상을 비췄다.

그러나 포로가 된 후, 그 거울이 깨졌다.

 

그는 죽으려 했으나 죽지 못했다.

마지막 수류탄이 없었고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아니, 죽음이 그를 멀리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안도가 아닌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였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가족의 비극이라는 인식이 절절했다.

 

생존이 배신이 되는 현실

그는 생각했다.

존재가 스스로의 죽음을 향하는 것이라면 

자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는 선택하지 못했다.

선택은 윤리의 전제이지만

그의 세계에서 윤리는 명령이었다.

 

죽음보다 고통스런  절망 가운데 남에서온 기자를 만났다.

제한된 시간 속에 오가는 짧은 대화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라는 존재가 단 한 번도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죽음조차도 선택할 수 없었다는 사실

그는 죽을 자유도, 살 자유도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나는… .

이 선언은 타인이 부여한 정의가 아니라,

스스로 내린 정의(定意)였다.

존재는 소유될 수 없다는 깨달음.

인식은 두려움 너머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

윤리는 복종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깨달음을.

 

그는 다른 질문을 품었다.

만약 인간이 체제의 도구라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왜 이렇게 죄책감이 깊은가.

고통은 증거였다.

 

죽음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을 지모르나

존재는 결코 타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설령 한 사람이 평생 인질로 살아왔다 해도,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그 순간

어떤 권력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가 된다.

 

그는 여전히 포로였다.

그러나 南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고

질문은 자유의 시작이었다.

 

그의 생명은 아직 위태하다.

가족의 운명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유의 능력만이 인간을 인간으로 답게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에게 다시 질문했다.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이 질문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쇠창살이 아닌 밝은 창문이  보였다. 

최종엽 대표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