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

[특별 기고] 광명시의 도시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종엽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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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인가 군림인가, 광명 너부대 현장에서 본 리더십 '시장'의 권위나 상인의 존엄에 차이는 없다. 진정한 동량(棟梁)의 조건은 실적의 수치보다 시민의 인권이 우선.

[편집자 주]

본지는 지난 수개월간 광명 재개발 현장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며 서민들의 절규를 담은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는 외지 언론임에도 굳이 재개발 서사(敍事)를 기록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광명의 아픔이 단순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재개발 행정이 직면한 ‘일그러진 자화상’이자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 기고문은 지도자의 본질과 헌법적 가치를 묻는 기고를 게재한다.

 

1. 섬김인가 군림인가, 광명 너부대 현장이 증명한 리더십의 그늘  

 

시민의 아픈 과거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닌 치유의 산물인가. 현대사의 비극인 6.25 남북전쟁 이후, 정부의 개발 정책에 밀려난 서민들은 변두리로 강제 이주해 스스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왔다. 이 과정에서 잉태한 무허가 주택들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돌보지 못한 시대에 시민들이 써 내려간 혹독한 생존의 '서사'다. 

 

그러나 광명시 '너부대' 재개발 현장의 모습은 비정했다. 시장이 직접 현장에서 주민을 설득해 동의를 받아 놓고, 이듬해 재동의 없이 사업 방향을 비틀어 원주민을 내몬 행위는 ‘행정적 배임’이자 지도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신의를 저버린 처사다. 선량한 서민들은 그렇게 길거리로 내몰렸다.

 

2. 시장이나 상인의 존엄은 같다: 인권의 가치를 망각하는 리더십은 위험하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의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존엄의 가치는 계급과 무관하여 시장의 권위나 길거리 상인의 삶이나 본질적 무게는 같다. 

만약, 자신의 치적을 위해 서민의 거주권을 유린했다면 헌법이 명시한 ‘인권 보장과 행복 추구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폭거가 될 것이다. 헌법 가치를 짓밟는 공권력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이는 준엄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3. 진정한 동량(棟梁)의 조건, 실적의 수치보다 시민의 인권을 먼저 보라 

 

지도자의 미덕은 군림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이다. 만약 시민의 고통을 업적으로 치장하는 행정이 있다면 그것은 신기루일 뿐 시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화려한 외형은 잠시 눈을 속일 수 있으나, 신뢰와 공감이 결여된 리더십은 결국 공동체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역사의 심판을 부를 뿐이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동량(棟梁)의 자질은 눈에 보이는 실적보다,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그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판가름 난다. 공감과 관용, 따뜻한 윤리적 가치판단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기둥이며, 그 토양 위에서만 한 지도자의 진정한 성공은 활짝 꽃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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