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편지

문학이 누구의 허락으로 쓰이는가?

최종엽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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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의 글을 M문학지에 실었습니까?”
최종엽 (시인, 언론인)

“그 글을 왜 M문학지에 보냈습니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격앙되어 있었다.
상대는 오랜 세월 문학의 세계에 몸담아온 분이었다.
한동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30년전 수필문학에서  등단했고 

우연히 S문학에서 시문학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언어를 다듬고 삶을 성찰하며,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특정 문학지에 글이 실렸다는 이유로 ‘배신’이 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을 정조준했다.  

순간 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S문단을 통해 등단했다는 것은, 이후 발표되는 모든 글까지 누군가의 승인 아래 놓여야 한다는 뜻인가.  문학은 원래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 아닌가.
일상의 언어를 미적으로 정제하고, 인간의 내면과 시대의 흔들림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
그렇다면 어떤 매체에 글을 실었는지를 따져 묻는 태도는, 문학 이전에 상식과 품격의 문제로 다가왔다.

 

전화 속에서는 날짜까지 언급되었다.

“00월 00일, 당신의 글이 M문학지에 실렸더군요.
그건 배신 아닙니까?”

그러나 나의 세계관은 그말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문학 이름의 행사장에서 특정인을 비난한 적이 없었고, 어떤 적대의 언어도 오간 바 없었다.
과거에는 모두가 함께 모여 담론을 나누고, 문학의 미래와 발전을 이야기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문학은 사유의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계와 소속을 확인하는 울타리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맥락은  비슷했다.

“왜 그 매체에 글을 실었습니까?”

순간 나는 현실 감 마저 흐려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지구의 언어가 아닌, 낯선 별에서 날아온 질문 같았다.

 

통화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뒤 나는 조금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문학지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고,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던 모양이다.
어떤 감정들은 세월 속에서도 봉합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마음속 경계선은 더욱 선명해졌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남과 북처럼 오랜 시간 대립하며 쌓여온 감정의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여 과거를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문학의 역사는 원래 다양한 흐름과 다른 목소리들이 함께 흘러오며 이루어진 것 아닌가.

세상에는 ‘미움이 사랑의 백배가 된다’는 말도 있다.
한때 가까웠던 사이일수록 갈라선 뒤의 상처는 더 깊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한 동아리의 문학 안에서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증오가 된다면, 그 풍경은 정치판을 연상하게 했다. 

 

만약 정치 조직이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진영이 있고, 노선이 있으며, 상대 진영으로 이동하는 일을 배신이라 부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학은 본래 인간의 내면과 자유를 탐색하는 영역 아닌가.

특정 문예지에 글을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소속과 충성의 언어가 등장하는 순간,
문학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림자를 느꼈다.

 

문학은 원래 인간을 넓히는 작업이라 믿어왔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세계를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문학의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자유를 제한하는 말이 등장하는가.

문득 오래전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진정한 문학은 사람을 소속시키기보다,
오히려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묻고 있다.

문학이  누구의 허락으로 쓰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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