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분석] 지역주택조합의 민낯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1980년대 도입 이래, 무주택 서민들이 청약 경쟁 없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조합원들이 직접 조합을 결성하고 부지를 매입해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방식이나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전국 618개 조합에 대한 분쟁 현황조사 결과는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합의 30.2%에 해당하는 187개 조합에서 총 293건의 분쟁이 발생했다. 특히 사업 초기 단계인 조합원 모집 및 설립인가 과정에서 부실 운영(52건), 탈퇴·환불 지연(50건) 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은 제도의 구조적 허점이 사업 초기부터 드러난다는 방증이다.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공사비 증액, 자격 부적격 조합원에 대한 분담금 수령 등 심각한 운영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한 조합장은 지정된 신탁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가입비를 수령해 경찰에 고발되었고, 또 다른 조합에서는 시공사가 최초 계약금액의 50%에 달하는 공사비 증액을 요구해 조합원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역주택 조합의 분쟁 사례
분쟁의 첫 단추는 조합원 모집 단계에서 103개 조합이 갈등을 격었고 설립인가 및 사업계획 승인 이후에도 각각 42개씩 분쟁이 발생했다. 이는 토지 확보의 어려움, 인허가 지연, 정보 비대칭 등 사업 초기의 불확실성이 분쟁의 주요 원인임을 시사한다.
지역 별로는 서울이 110개 조합 중 63개에서 분쟁이 발생해 가장 많았고, 경기(32개), 광주(23개)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지역 주택조합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지역일수록 분쟁 발생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도 구조의 맹점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조합, 시공사, 업무대행사 간 계약을 통해 추진된다. 조합은 업무대행사에 조합원 모집, 토지 매입, 인허가 절차 등을 위탁하고, 시공사는 공동사업주체로서 공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조합원은 정보의 비대칭으로 사업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업무대행사의 과도한 권한과 불투명한 운영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특히 피해 사례를 분석하면 업무대행사의 책임감과 윤리성 부족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대다수로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수 실태점검을 실시하고, 주요 분쟁 사업장에 대해 관계기관과 합동 특별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중재·조정 지원과 함께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점검과 중재를 넘어, 지역주택조합 제도의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조합원 보호를 위한 정보공개 강화, 업무대행사에 대한 자격 검증 및 책임 강화, 조합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주택조합은 자율적 주택 공급이라는 이상을 품고 출발했지만, 현실에서는 조합원 피해와 분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 제도는 더 이상 서민의 내 집 마련 수단이 아닌, 갈등과 불신의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국토부의 실태점검이 단순한 진단에 그치지 않고, 제도 혁신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