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에베레스트 설봉에서 사슴의 기도

공기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가 찢어지는 감각이 전해졌다. 표범의 근육이 눈 위를 스치며 낮은 파열음을 냈다. 앞서가는 사슴의 발굽이 만들어낸 눈 가루가 공중에 흩어졌다. 굶주림은 논리가 없다. 오직 수축하는 근육과 팽창하는 폐, 그리고 좁혀지는 거리 표범이 뒷다리에 힘을 싣고 사슴을 낚아 채려는 순간,
그때 산이 움직였다. 거대한 백색의 파도가 모든 산을 집어 삼켰다. 비명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세상이 뒤집혔고, 하얀 어둠이 봉우리를 덮었다. 사슴은 본능적으로 눈을 팠다. 몸이 냉동되어 갈 무렵 차가운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사슴은 구멍 밖으로 몸을 밀어 올렸다, 살았다!
그때 고막을 찟는 울부짓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슴의 눈에는 조금 전 자신을 물어 뜯어 배를 채우려던 표범의 무서운 눈이 보였다. 사슴은 표범 앞에서 머리를 박고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무서움과 증오는 생각 밖이었다. 그저 눈앞에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자비적 반사 작용이었다.
표범이 눈더미 밖으로 몸이 빠져나왔을 때, 하늘에는 거대한 수리가 기진 맥진한 사슴을 덮쳤다. 표범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녹초 된 몸을 날려 사슴의 등을 덮친 독수리의 가죽을 찟었다. 표범의 아가리가 수리를 물어 뜯었고 수리는 사슴을 포기하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표범은 사슴을 먹지 않았다. 사슴도 도망치지 않았다. 두 짐승은 서로의 체취를 섞은 채 눈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생존을 확인하는 듯, 이윽고 표범이 먼저 몸을 돌려 사라졌다. 사슴은 반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문장 없는 영상에 생각이 멈추었다. '야수'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든 오만이다. 저들은 우리가 수천 년간 잃어버렸던 생존의 예의를 행하고 떠났다. 이곳에 기록될 '사건'은 없었다. 오직 '경외'만이 남았을 내 생각을 잠식했다.
[사슴의 기도]
추격은 굶주림의 노래였고
도망은 생존의 기도였다.
생의 절벽에서 끝에서
사슴의 기도가 멈췄다.
눈 더미 아래 잠긴 건
포식자의 가냘픈 숨소리.
사슴은 제 목덜미를 노리던 무서운 발톱을 위해
힘 빠진 발굽으로 얼어붙은 침묵을 파헤쳤다.
이때 하늘에는 검은 수리가
사슴의 여린 등을 낚아 채는 순간
깨어난 맹수는 이빨을 갈아 방패가 되어 주었다.
허기를 이긴 건 의리였고,
공포를 넘은 건 예의였다.
둘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뒷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