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아현 재개발3구역 - ‘고무줄 잣대’와 ‘매표’로 얼룩진 임시총회의 결과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윤리학에서 ‘정언명령’을 주장하며, 어떤 행위가 도덕적 가치가 되려면 그 행위의 규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나에게 이로울 때만 적용하고, 불리할 때 뒤집는 규칙은 결코 정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법원이 제동을 건 북아현3재정비촉진구역의 조합 임원 해임총회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2025카합50027)은, 우리네 정비사업 현장이 칸트가 경고했던 이기적 '가언명령’과 ‘비틀린 다수결’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이 중독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서글픈 자화상이다.
내 편의 지장은 ‘성스러운 의사 표시’이고, 상대 편의 지장은 ‘출처 불명의 위조품?
당시 해임총회 발의자 측은 전체 조합원의 절반에 달하는 944장의 반대파 서면결의서를 사회자 의 한마디 멘트로 일괄 무효화했다. 사유는 이렇다. "지장만 찍혀 진위 확인이 안 된다", ‘회송용 봉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사전에 공고한 안내문에는 지장 날인을 적법한 본인확인 방식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내 편의 지장은 ‘성스러운 의사 표시’이고, 상대 편의 지장은 ‘출처 불명의 위조품’이라는 이 무지막지한 고무줄 잣대 앞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결권마저 무참히 짓밟혔다.
법원은 이 오만한 독선에 준엄한 채찍을
조합원의 의결권은 가능한 한 넓게 보장되어야 하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대한 민심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충격적인 것은 돈으로 표를 사려 한 ‘매표(買票) 행위’의 적발이다. 발의자 측은 총회 참석과 서면결의서 제출의 대가로 과도한 수당을 지급하면서, 반대 의견을 낸 조합원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사법부가 판결문에 명시했듯, 이는 단순한 투표 독려가 아니라 ‘사실상 안건 찬성을 유도하여 조합원의 총의를 심각하게 왜곡한 행위’이다. 정비사업지마다 만연한 OS(홍보요원) 동원과 금권 투표의 추악한 민낯이 사법부의 엄중한 심판대 위에서 그대로 폭로된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조합 임원의 해임과 견제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그 권리가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을 상실한 채, 오직 ‘조합 주도권 찬탈’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편법으로 얼룩질 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반대파의 표를 꼬투리 잡아 짓밟고 자금을 동원해 조합원을 현혹하는 진흙탕 싸움
소크라테스는 대중의 맹목적인 숫자가 정의를 담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절차가 무너진 다수결은 가장 위험한 ‘중우정치’로 전락한다고 했다. 북아현3구역이 치르는 홍역은 결코 남의 일이 아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눈앞의 패권을 잡기 위해 반대파의 표를 꼬투리 잡아 짓밟고 자금을 동원해 조합원을 현혹하는 진흙탕 싸움이 소리 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조합의 분열, 소송전, 그리고 사업 지연은 결국 공사비 상승이라는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조합원 전체의 눈물 어린 분담금 폭탄으로 돌아온다. 편법을 동원한 이들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고 자축할 때, 조합원들의 삶의 터전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서면결의서 제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속히 전자투표 제도를 의무화하고 본인확인 절차를 전산화하는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도시정비사업의 본질은 단순히 낡은 집을 부수고 새 아파트를 올리는 건축공사가 아니다.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권리를 공정하게 나누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인간 중심의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편법과 꼼수로 세운 성(城)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진다는 진리를, 북아현3구역 판결은 우리에게 똑똑히 증명해 주었다. 상식과 법치가 바로 서는 정비사업의 그날까지, 언론과 조합원 모두의 서슬 푸른 감시의 눈동자는 결코 잠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