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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철학] 사건의 기록 속에서 내일의 기준을 발견하다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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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변화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존재의 상태를 향한 본질적 질문.
최종엽 기자 

인류의 문명은 질문으로 성장해 왔다.

질문은 인간을 멈추게 하고,
멈춤은 성찰을 낳으며,
성찰은 새로운 문명을 만든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이 물음은 단순히 아담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향한 물음이며,
양심을 향한 물음이고,
존재의 상태를 향한 본질적 질문이다.

 

고대 그리스 역시 또 하나의 질문을 인류에게 남겼다.

"너 자신을 알라."

그 질문은  인간을 바뿐 걸음을 멈추게 했고, 성찰을 가져왔으며 
철학을 낳고 문명을 일으켰다.

 

이 두 질문은 시대와 종교를 초월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의 선택을 훗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인가, 아니면 변화인가.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진실한 사람이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정답을 찾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

 

질문은 삶의 나침반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바라보게 하고,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세우게 하며,
실패를 좌절이 아닌 배움으로 바꾸고,
상처를 성찰로, 성찰을 성장으로 이끄는 내면의 힘이 된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올바른 질문은 또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고,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작은 시작이 된다.

 

인간의 비극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비극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출 때 시작된다.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고,
감정은 갈등을 낳으며,
갈등은 분열을 낳는다.

반대로 질문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기준을 만들며,

기준은 신뢰를 회복시킨다.

그래서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는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건을 통해 인간을 묻고,  인간을 통해 사회를 묻고,

사회를 통해 다시 우리 자신을 묻는 사람이다.

기록은 사실을 남기지만, 질문은 시대를 남긴다.

이 연재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을 독자와 함께 붙들고자 한다.

 

좋은 질문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깊은 질문은 한 사회의 방향을 바꾸며,

위대한 질문은 문명의 기준을 바꾼다.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 한마디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찾게 하는 나침반이며,
양심이 흔들릴 때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기준이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희망이다.

 

모든 위대한 변화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사회로, 

더 나은 문명으로 조용히 이끌고 있다.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전편, "한자루의 펜, 하나의 양심" 

다시보기 :  https://citynews.co.kr/post/Z2BKdK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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