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쓴 편지] 진실 규명 없는 용서와 화해는 위험하다

“이제 그만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 “가족끼리 그냥 잊고 살자.”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들리는 이 말들 속에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악은 대체로 진실을 회피할 때 태어난다.” 진실을 외면한 화해는 마치 병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고 증상만 덮어둔 것과 같습니다.
▣ 진실 없는 화해는 정의를 무너뜨린다
진실이 외면된 화해는 정의를 무너뜨리며, 과거를 바로잡는 일은 윤리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불편할지라도 진실은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헌법'과 같고, 이를 무시하면 신뢰와 도덕적 나침반을 잃게 됩니다.
▣ 가문의 비극 — 정의를 외면한 형제의 최후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난 뒤, 장남 연남생과 동생들(남건·남산)은 대막리지의 자리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그 갈등의 뿌리는, 아버지가 남긴 청산 되지 않은 불신에 대한 침묵이었습니다. 연남생이 요구한 것은 권력이나 복수가 아닌 ‘진실의 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들은 진실보다 권력이었습니다.
이들의 내분은 백성들의 마음과 나라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했습니다. “진실은 타인의 얼굴 앞에서 시작된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배신과 침묵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불씨가 됩니다.
▣ 정의로운 기억만이 진정한 화해를 가능케해
진정한 화해는 ‘응징’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책임의 공유입니다. 배신과 불화를 바로잡는 응보적 정의, 피해자의 상처를 인정하고 회복시키는 회복적 정의 이 두 가지는 모두 진실 규명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됩니다. 진실을 직면하는 행위는 단지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다움을 회복하는 존재론적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스럽더라도 진실과 마주할 용기, 그 진실을 인정하는 겸허의 마음이야 말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정의'를 향한 출발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조직에도 아직 청산 되지 않은 연씨 가문의 비극은 없는지, 조용히 물어봅시다. 진실을 직면하는 순간, 비로소 공동체는진정한  화해의 길 위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