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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쓰는 편지]삶을 왜곡하고 스스로를 망치는 '확증편향'
아침에 쓰는 편지

[아침에 쓰는 편지]삶을 왜곡하고 스스로를 망치는 '확증편향'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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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의 안경을 벗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아(自我)를 마주하고, 타인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
       본지 대표기자

혼잡한 길에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왜 앞을 안 보고 다녀!", "그러는 당신은!",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해결될 일을 감정이 골을 만들고, 마음에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바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향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어깨를 부딪쳤을 때, 반사적으로 상대를 탓하는 것은 확증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미 내가 '피해자'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는 증거(상대방의 부주의)만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죠.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진실이라 믿고, 그 이면에 숨겨진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 본질적인 의도는 애써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비단 찰나의 스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오해는 대개 이 편향, 즉 자신만의 좁은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그것을 진실이라 확신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정작 중요한 '사실'로부터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됩니다.

 

편향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1961년, 미국 CIA가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해 기획했던 피그스만 침공 작전은 편향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였습니다. 

 

케네디 행정부는 망명 쿠바인들로 주축이 된 특공대가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쿠바 민중의 지지와 미국침공에 대한 준비, 침투 부대의 전력적 한계를 무시하였고 "이작전은 성공한다"는 집단 사고에 갇힌 결정은 결국 처참한 실패로 끝나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편향은 분명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관리하고 넘어설 수 있는 '지혜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 시작은 다름 아닌 '자기 의심'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믿음을 잠시 내려놓고,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일찍이 이러한 편향의 위험성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찾으려 했고,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야말로 진리에 다가가는 핵심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정약용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다양한 해석을 비교하며 진리에 다가가려 했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이 모든 지혜의 공통점은 한 가지로 수렴됩니다. 바로 "나는 옳다"라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진리로부터 멀어진다는 깨달음이죠. 그러므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문하며,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려는 겸손한 자세와 태도야말로 편향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진정한 인격 성장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판단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때마다 내면에서 울리는 '옳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나 잠시 멈춰 서서 '정말 그럴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반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렌즈가 때로는 세상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성찰의 시작이자 성숙한 관계를 맺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지금 내리는 결정과 스스로 굳게  믿는 생각들은 과연 편향의 덧칠 없이 온전한 것일까? 라는 질문과 의심은 더 넓고 깊은 세상으로 한 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믿습니다. 편향의 안경을 벗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타인과 더 깊이 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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