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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최씨, 독립운동의 영웅 최재형 선생 부부 진혼재 국립현충원에서 엄숙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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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최씨, 독립운동의 영웅 최재형 선생 부부 진혼재 국립현충원에서 엄숙하게 열렸다.

최종엽 기자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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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시정비신문 최종엽 기자 =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부부 진혼제가 지난 23일 (토)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전주최씨 평도공 종중에서 주최하고 평도공 직계 경절공과 결성공의 후원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일본 헌병대에 의해 사살,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순국 추정지의 흙으로 대체 하여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부인 최엘 여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지난 달 (8월14일) 국립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합장했었다. 합장식에는 전주최씨 결정공(평도공손) 후손 및 유족들과 박민식 장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등이 참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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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군납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군사도로 건설 시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하여 초근목피의 조선인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그는 연추에서 도헌(都憲:군수)으로 선출되었고 1894년에는 10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초청을 받는 등 명실상부한 지위를 누리며 한인은 물론 러시아인으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최재형은 극동지역에 182개의 민족학교를 설립하였고 260명의 교사을 통해 6,00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민족의 지식인으로 성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군납을 통해 모은 엄청난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하였다. 최재형은 연해주에서 13도의군을 조직 의병들을 지원하였으며 당시 최재형이 지원한 총기는 일본군을 능가하는 최신식 무기로 입 독립군을 무장시켰다. 이를 통해 동의회는 러시아 국경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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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의회 산하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하는 진두지휘하던 안중근은 최재형의 집에서 숙식을 였고 선생은 안중근을 도와 1908년 독립단체 동의회를 조직, 최재형은 총장이 되고 안중근은 평의원으로 참여한다.

 

최재형은 자금난에 문을 닫게 된 해조신문을 인수하여 《대동공보》를 발행,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안중근은 최재형의 집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하며 최재형의 대동공보 기자증을 소지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소식을 듣고 최재형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주살을 모의 이토의 사살 장소를 하얼빈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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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은 안중근에게 권총을 지원하고 안중근 거사 후 일본 관할지가 아닌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 받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였으나 무산되었고 1910년 일본 법정의 재판 끝에 순국하고만다. 이에 최재형은 안중근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에 괴로워하다  안중근의 처자들을 불러 그들을 부양하고 보호했다. 

 

선생은 1919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최초 임시정부의 대한국민의회에서 외교부장을 맡았다. 그 이후 1919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선생은 1920년 4월우수리스크에서 연해주에 침입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일본군 헌병대가 청사를 옮기는 과정의 틈을 노려 탈출을 감행했으나 일본 헌병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때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서 그의 유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의 부호이자 권력가의 안일한 삶을 포기하고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고난을 함께하며 교육자의 길,  독립운동의 군자금 지원과  임시정부의 내각에 참여하였고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 이토히로부미 주살을 도운 진정한 애국자요 민족의 영웅이다. 

 

"총알을 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 붉은피로 독립기를 크게 쓰고 / 동심동력하여 성명을

동맹하기로 / 청천백일에 증명하노니 슬프다 / 동지 제군이여 !

-동의회 총장 최재형-

최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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