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사유] 격동의 정국, 철학에 길을 묻다

제429회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검찰 수사권 조정, 언론 개혁 법안 등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여야는 한 치의 양보 없는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여, 야모두는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는 입장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은 피로감과 불신뿐이다.
이처럼 정치가 혼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까? 여기서 서양 철학의 두 거장, 이마누엘 칸트와 제레미 벤담의 사유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보편적 정의에 부합하는가?”
칸트는 도덕적 행위의 기준을 ‘의무’와 ‘보편성’에 둔다. 이를 여의도 정치에 적용하면 공당의 결정이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당한가를 성찰해야 한다. 정파의 이익이나 지지층 결집을 위한 행위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법치주의, 언론의 독립성, 국민 통합 등 흔들림 없는 보편적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눈앞의 이익보다 원칙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가?”
반면 벤담은 "결과 중심의 윤리"를 강조한다. 그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윤리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안과 정책은 결국 국민 전체의 행복 총량을 얼마나 증대시키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검찰 개혁이든 언론 관련 법안이든, 그 결과가 대다수 국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가를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정파적 대립으로 인한 국정 공백은 국민 전체의 고통을 키우는 비윤리적 결과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
정치는 단순한 이념 대결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책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는 보편적 정의로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실질적 행복이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두 기준이 균형을 이룰 때,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가 부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칸트의 원칙과 벤담의 결과를 함께 고려할 때, 정치는 혼란의 정국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눈앞의 이익보다 국민 전체의 삶과 미래를 위한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국민의 삶을 더 이롭게 하려는 숭고한 목표 아래 지혜를 모을 때, 진정 ‘화합과 전진’은 물론 정책으로 승부하는 국회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