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재개발, 도시의 미래를 묻다 ,공공이 빠진 자리 갈등이 자란다

대한민국 재개발 현장은 전쟁터에 가깝다. 주민 간 찬반 갈등, 비대위의 등장, 시행사의 폭거 그리고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의 혼선까지. 재개발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권리와 이익이 충돌하는 투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재개발은 원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공공성의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산권, 투자 수익, 분양가, 시공 이익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며, 본질은 흐려지고 이익구조와 먹이사슬의 충돌이 지배한다.
그 중심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공공의 책임 회피다. 시행을 민간에 맡기고, 행정은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하고, 권리를 설계하며, 도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주체는 바로 공공이다. 공공이 빠진 자리에서 갈등이 자란다.
선진국은 다르다. 독일은 시민 중심의 도시재생을, 프랑스는 주거권을 헌법적 권리로 명시하며, 미국은 기후 대응과 도시복원을 결합한 전략을 펼친다. 이들은 공공이 도시의 주도권을 쥐고, 시민이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갈등을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이제 한국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공공이 시행을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며, 지속가능성과 공공성을 중심에 두는 한국형 도시재생 모델이 필요하다. 총괄기획가 제도 도입, 주민협의체 법제화, 스마트 플랫폼 기반의 도시계획 등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민간 참여업체의 기준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개발에 참여하는 민간업체의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경험과 능력 자본력뿐 아니라, 도덕성이 포함한 종합적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만이 도시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준이 명확해지면, 불투명한 선정 과정에서 비롯되는 갈등도 줄어들고, 시민의 불신도 해소될 수 있다.
도시를 되돌아보는 마음으로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도시의 미래는 건설사의 도면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공공의 철학으로 그려져야 한다. 재개발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도시 민주주의의 실현이어야 한다.
이 글을 쓰며, 나는 한때 재개발을 단순한 ‘개선’이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우리는 도시를 너무 쉽게 바꾸려 했던 건 아닐까? 삶의 터전을 숫자로 계산하고, 갈등을 행정으로 덮으려 했던 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삶의 기반이 흔들렸다. 그들에게 우리는 충분히 귀 기울였는가. 도시를 설계하는 이들이, 정책을 만드는 이들이, 그리고 글을 쓰는 나조차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 도시는 기억이고, 관계이며, 사람이다. 공공이 다시 중심을 잡고, 시민이 함께 그려가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미안함을 딛고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