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고] 성스러운 묘역에서  – 종중의 길을 묻다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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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제 부터 혈육인가. 생 매장 시키려 몸 부림쳐놓고서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고?
2025년 10월 15일 용인 공세동 평도공 시제의 모습

지난 시제일(10.15)연일 계속되던 가을비 멎고 하늘은 청명했다. 성스런 묘역에서 엄숙한 시제를 마치고 하산 길인 평도공 묘역 입구, 늦게 도착한 최00 원로는 나를 보는 순간 성난 매 눈으로 쏘아보며  "앞으로 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라며  공격하는 거친 발길은 성지에서의 몸가짐이나 이성은 없었고 분노와 폭력 그자체로 인식되었다. 

원로의 태도에  "언제는 동생 취급했단 말인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원로는 거친 손이 얼굴을 향했고 나의 안경과 휴대폰이 질퍽한 흙 길에 나뒹굴었다. 진흙 묻은 안경 위로 비친 그의 모습은 증오로 불타고 있었다.  종인들의 개입으로  상황은 순식간 종료되었으나 발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은 괴로웠다.  

 

00원로의 화가 난 이유는? 

 

지난 8일 감무공 시제 하루 전 00원로는 단톡방에 법과 사회통념을 말하며 종식회장의 즉각 퇴임을 주장하며 평도공 시제후 전국거주 종인들이 모인 감무공 발전토론회를 제안했고 시제일인 지난 10월 9일 감무공 시제 후 올해도 어김없이  고성이 오갔다.  

 

10.12일 나는 "명문 가문 정관 위에 군림"이란 제하의 글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부득이 개정된 정관을 탓하는 시각은 문제 있다는 맥락의 글을 썻는데 이에 화가 난 것으로 풀이되나,  성지에서 몸싸움으로 화풀이하는 태도는 작년 시제 때 전 평도공 감사의 무고에 이어 되 풀이 되는 갈등 유발이었다.  

 

      충효 사상의 대명사 최유경 전주최씨 중시조의 시제일, 하늘은 프르고 높았다. 

갈등에 대한 견해 

 

정론은 정론으로,  담론은 담론으로 받으며  토론이면 논증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이나 실수는 사과와 함께  방향 조정하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다, 그러나 종중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와 오류에 대해 사과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내가 어릴 때  조부님으로부터 들은 00원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고 의지가 굳어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조부의 말씀을  회상하며 1977년 초급장교 시절 원로가 경영하는 약국를 수소문 끝에 찾아 조부님 말씀으로 덕담을 나누었고  전역 후에는 그의 선거를 돕기도 하며 혈육의 정을 끈끈히 하는 과정가운데 00원로에 대한  나의 인식은 건전한 윤리관과 가치 철학을 가진 분으로 헌시를  써서 증정한 일도 있다. 그러나  종사를 통해  지근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가 걸어야 할 종중의 길은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여 서로 미워하지 않으며 문제나 갈등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그런데 지금 종중은 개인적  유익을 위해 종인을 수단화, 도구화하며 옳고 그름을 무론하고 이합집산 하는 모습은 뼈를 깍는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리더는 군림이 아니라 헌신하며 솔선적 모범과 이성적 양심으로 행하는 자리이며 종인들 또한 잘못된 일에는 침묵하지 않는 용기 있는 참여만이 종중이란 동동체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내가 이 글을 글을 쓰는 이유는 어떤 특정인에 대한 비난이나 감정 해소가 아니며 종중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윤리적 방향과 종중 정상화를 위한 호소문임을 밝힌다.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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