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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제3회 ]배신의 아이콘,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인문

[아침 편지,  제3회 ]배신의 아이콘,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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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예수를 은30냥에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찌른 이유
 최종엽 : 대표기자

배신이란 파멸의 씨앗이다

우리는 서로 믿고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사람 정말 믿어도 되는가? 라고

누군가는 믿음으로 길을 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길을  짓밟고 파괴한다. 

 

배신은 단순한 약속의 파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립의 길인 동시에

신뢰의 기반을 허물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해(自害)해위이며,

전체를 파괴하는 내부 침식의 폭발물이다.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학살들,

재개발의 주인은 주민이다.

주인에게 동의서만 요구하고 권리가 실종 되지는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업체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주인 된 고객에 충성할까?

주민이 살필 것은 업체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그들의 행위가 주민을 위함인지, 

아니면  주민을 이용한 탐욕은 아닌지,

그들이 걸어온 족적을 꼼꼼히 살피면 답이 보인다. 

 

역사 속의 배신, 선명하게 찍힌 오점

 

유다는 예수를 은30냥에 팔았으나 ,

결과는 스스로 목을 맨 밧줄이었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카이사르를  찔렀으나 

결국 스스로 자결로 마감하고 역사는 브루투스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배신을 일상처럼 경험한다.

약속을 뒤집고 책임을 전가하고

함정을 파고 올무를 놓는 비 인간적인 행위의 교훈을 본다. 

 

배신은 인간의 길이 아니며 그 끝은 고립과 비극이다. 

재개발은 인간 중심 프로젝트다.  

믿음은 쉽게 쌓이지 않으며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기 어렵다.

최종엽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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