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우리는 두 개의 울림을 듣는다. 하나는 정의를 향한 안중근의 총성과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에서 울려 퍼진 종소리, 또 하나는 오늘의 사면 명단이 던진 역설적 울림이다. 그 두 울림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 정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1909년, 뤼순 감옥. 안중근은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했다.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는 아들을 위해 수의를 지어 보내며, 이렇게 썼다. “너를 위해 살려 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죽으라.”
바늘 끝에 눈물을 맺히고 실 매듭에 사랑을 꿰어 아들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어머니.
그 수의를 받아 든 젊은 안중근의 가슴은 비통의 눈물이 아닌 결단의 통곡이었다.
어미니가 지은 수의는 시신의 옷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을 감쌀 성스러움 깃들었고
조마리아의 편지는 모성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 주는 철학적 선언이었다. 그것은 안중근의 세계관을 완성했고 그의 세계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의의 상징이 되었다.
안중근은 총을 들었지만, 그 총성은 증오가 아니라 정의의 종소리였으며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했고, 어머니의 뜻에 영원히 사는 죽음으로 응답하여 한민족의 정신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 우리는 뜻밖의 현실을 마주한다.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으로 유죄가 확정된 인물이,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광복절 특사가
되었다. 한 장의 사면이 정의의 좌표를 흔드는 순간, 우리는 안중근의 세계관을 다시 소환해야
한다.
광복절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날 이상의 의미가 담긴다. 그날은 우리가 어떤 정의를 기억하고, 어떤 세계관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다.
한 벌의 수의는 젊음을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그 죽음은 민족을 살렸다. 한 장의 서신은 우리 모두의 삶의 의미를 남겼다. 오늘, 한 장의 사면은 정의를 시험한다.
“정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외면할 때만 침묵할 뿐이다.”
광복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져 진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관으로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