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내일은 저렇게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날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우긴다.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따라 하면 틀렸다도 한다. 이렇게 막무가내의 사람이 정치인만 있는 게 아니다. 멀쩡하게 생긴 사기꾼도 있고 선한 사람 등치는 맛에 사는 사람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대로를 활보하면서 ‘나한테 속지 않을 사람 나와 봐’라 외치고 있다. 잘난 정치인이나 멀쩡하게 생긴 사기꾼이나, 자신들이 걸어 놓은 덫에 누가 걸려드나 시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속아 달라고 사정하다가도 속아 주지 않으면 냅다 그냥 겁박하기도 한다. 그러니 순진한 국민은 속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줄 듯 말 듯, 해결해줄 듯 말 듯, 감질나게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면서 민원인의 등골을 빼먹으려 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스스로 지쳐 떠나가면 썩은 이 빠져 시원하다고 돌아서서 영혼 없는 파티를 즐길 것이다. 몇 월 며칠에 돌려줄게’ 하면서 돈을 꾸어간다. 그 날짜가 되면 ‘앗! 내가 날짜를 착각했네’. 그러면서 ‘다음 달에는 반드시 갚을 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한다. 빌려준 사람의 속사정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 [송란교 작가의] 호리성(好利性)과 도덕성(道德性) - 호리성과 도덕성 -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이익이 흘러가는 길목은 사람들이 막아서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틀려 애를 쓴다. 한 방울도 허투루 흘려보내서는 아니 된다고 외친다. 돈주머니는 먼저 챙기는 사람이 왕이라 하면서 악랄하게 다툰다. 정보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 돈이 모인다. 이익이 된다면 쏜살같이 모이고 손해라 생각되면 빠르게 흩어진다. 한여름에 비가 그치면 층이 진 높은 논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찾아 옹기종기 모여드는 미꾸라지를 닮아간다. 돈 되는 이야기, 돈 되는 정보에 날카로운 빨대를 꽂는 거머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돈으로 무덤을 쌓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눈물로 무덤을 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관자(管子)는 금장편(禁藏篇)에서 이익이 있는 곳에는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고 해로움이 있는 곳에는 피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루에 이틀 길을 걷는 것은 이익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만 길의 거친 파도와 맞서 헤엄치는 것은 이익이 물에 있기 때문이다. 천장(千丈) 높이의 험한 산을 뛰어오르는 것은 이익이 산 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비자(韓非子)는 설림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