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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엽의] 一家의 의미

 나는 어린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취학 전, 조부님 손 잡고 버스 타고 기차타   고 一家 친척을 방문했었는데 가는 곳, 머무는 집마다 어른은 어른데로 나는   또래들과 정겨운 대화가 밤새는 줄 몰랐었고 방문을 마칠 때, 내 주머니에는 꼬깃한 지패와 여정에 즐길  음식의  추억이 선명하다.    

 

첩첩산중, 리어커 자전거도 구경 못 하는 일가 몇 채, 타성 몇 옹기종기 모인 달팽이 마을 '안검단'은 70년 전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나는 부모님보다 조부모의 사랑을 각별히 받으며 성장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듬해, 그러니까 내 나이 10살적  할머니와 나  그리고 사촌형 부부와 인형처럼 예쁜'옥자가 함께 살던 우리 집은 동내 제일 富者였으나 보릿고개 걱정은 피하지 못했었다.

 

눈 내리는 어느날  해질 녘, 흰 두루마기에 얼굴 빛 유난히 하얀 사적골 아저씨가 우리 집을 방문하셨는데 식구들은 버선 발로 반겼었고  그날  형님은 씨암탉 잡고 나는 구들장을 데웠으며 우리는 모처럼 등잔불 아래 모여 성대한 만찬을 즐겼었다.

 

몇 일후 아저씨는 여장을 챙겼는데 할머니는 충분히 더 쉬었다 해동 후 떠나라 말리셨고 아저씨는 행장을 내려놓았는데 나는 좋았고 젊은 형수님은 반찬 걱정에 힘들었음을 짐작 한다. 

 

바람이 문풍지를 괴롭히던 어느 깊은 밤,  나는 아저씨의 신음에 놀라 안방 할머니에 알리고자 했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미소로 나를 안심시켰는데  이틋날 아저씨 얼굴의 병색은 더 짙어 보였다.

 

그후 할머니는 계란 묶음 몇 참께 몇 되 지패 몇 장 들고 고개 넘어 빙잇 길 돌아 20리 황화 장에 가시어 약 몇 첩을 지어 내밀며 "빨리 쾌차혀"라 말씀 하실 때 아저씨의 삼키는 눈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월 대보름을 몇 일 앞 둔 유난히 하늘 파란 날 아저씨는 이른 아침 드시고 길을 떠나셨는데  할머니는 몇 날을 마음 아파 슬퍼하셨었다.

 

세월은 흘러 내가 조부모님 나이가 되어 종사에 관여하고 있으나 어린 시절 일가의 정과  애틋함은 찾을 수 없고 덤덤한 만남과 사무적 언어, 무심한 태도는 일가라기 보다 외지인의 만남같은데  한 조상의 뿌리를 가진 성(姓)과 본이 같은  일족, 친척의 소중한 관계인 것을......, 

 

조상의 숨결과 일가의 의미와 머 훗날의 후손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