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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엽의] 진시황과 서복의 불로초 탐사

진시황은 조,한.위.초.연.제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한 후 만리장성 축조와 양자강과 황하를 연결하는 대운하 건설에 이어 아방궁을 지어 10.000여명의 궁녀를 곁에 두었고 역사, 농, 의학관련 서적 외 모든 책을 불사르는 분서(焚書)와 460명의 유생을 구덩이에 생매장하는 갱유(坑儒)를 저질렀는데 역사는 이를 분서갱유라 칭한다.

 

그는 또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하는 한편 사후(死後)를 대비하여 대비 병마용 무덤을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다 할 것이다.서복과 진시황제제나라 사람 서복은 방사(方士)로서 박식 다능하고 다양하고 의학, 천문, 항해 등의 지식에 통달했는데 이런 이유로 진시황으로 부터 신임이 두터웠다. 6국을 통일한 후진시황은 불로장생하기를 원했고 서복은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영주산(한라산)에 신선이 있다는 조서를 올렸다.

이에 시황은 3천명의 동남동녀와 3년분의 식량과 피복, 의약품 등을 지원했다.대규모 선단을 이룬 서복일행은 불로초를 구해 떠났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후환이 두려워 돌아가지 못했다고 기록되어있다.아내로부터 정보를 듣고 탐사를 계획하다

 

▲ 서복의 동도 출항선중국 강소성은 전남지역과 같은 위도상에 위치함에 따라 기온은 서울과 차이가 없었고 날씨는 맑으나 뿌연 황사가 안개처럼 대기를 덮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탄 자동차는 동해에서 청도방향으로 6차선 고속도로에 진입, 정속으로 달렸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차량들은 주로 일제의 도요다와 유럽차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드물게 현대나 기아차가 보였다. 중국의 자동차는 미 등록댓수를 포함 3억9천9백만대의 거대한 시장인데 우리나라 자동차 점유율은 4%대에 불과하다.고속도로를 40여분을 달려 연운항시 방향으로 빠져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가을 하늘아래 펼쳐지는 황금빛 농촌풍경은 넓은 농토가 평원을 이루며 마을을 이루고 수확기에 접어든 과수원에는 사과가 붉게 익어 우리 농촌과 유사한 풍경이었는데 농토는 넓고 민가는 적어 이곳 인민들의 삶이 우리 농촌보다 풍요로워 보였다.서복마을을 목전에 두고 시골 장터가 보였다.

 

시장은 난전인데 농부들이 직접 키우고 가꾼 가축과 곡물 및 바다에서 채취한 해물들을 전마다 쌓아놓고 판매하는 모습이 70년대 우리 농촌시장의 풍경과 유사하다. 특이한 것은 이곳 사람들의 얼굴이 유난히 검고 거칠었는데 이는 세찬 해풍과 광활한 풍토적 환경,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대인의 문화 기질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복 기념관에서기념관은 민가와 2km정도 이격된 외진 곳에 위치했고 서복기념관으로부터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는 궁전을 연상하게 하는 웅장한 사찰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념관에는 여기 저기 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념관 대문은 평소 개방하지 않고 쪽문을 사용하며 특별한 경우에 만 문을 오픈한다는데 오늘은 고영득 선생이 관련부처에 연락, 대문으로 관리관의 안내를 받으며 기념관에 들어섰다.기념관은 이중 구조로 이루어 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 우측에는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정면에는 사당으로 서복선생의 초상화가 있고 제를 드릴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현지 관리관은 전시된 그림과 글을 설명하면서 서복의 동도 출항은 한. 중, 일본 간 최초의 교류였으며 중국의 선진기술과 문물을 한국과 일본에 전파하여 한일 문명에 이바지 했며 출항 자체가 곧 평화사절의 의미가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념관 내부의 서복 사당서복 기념관을 정면으로 보아 약 500미터 떨어진 우측에는 장엄하고 웅장한 사찰이 대궐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사찰에 전담 관리자 한사람 보이지 않았고 정문 밖에는 비닐 천막이 보였고 천막 안에 부처의 상이 놓여있었다.

 

 

필자가 접근하자 두 손을 합장 허리를 굽혀 불교식 예절을 표하는데 중국 화폐 몇 장이 용기에 담겨있어 성의를 표하려 지갑을 찾으니 자켓을 자동차에 두고 와 미안스러웠다.기자는 몇 년 전 베이징시를 방문하였는데 중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지단문화축제’에 대해 소개 받았었다.

 

지단문화축제란 옛날 큰 사찰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불을 드리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사찰을 통과하는 주요 길목에는 상인들이 몰려 장터를 이루었고 성공한 상인들이 오늘날 기업을 이루었는데 기업들이 상단을 이루고 문화예술단을 꾸려 전 세계에 중국문화를 알리는 행사가 지단문화축제다.

 

 

기자는 이 축제를 한국에 유치하고자 노력한 일이 있다. 오늘 찾은 이 사찰은 초대형 사찰로 중국의 종교말살정책 이전에는 엄청난 규모의 스님과 예불객 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탐사를 마치며미래학자 피터드레커는 “21세기는 문화산업에서 경쟁력과 성패가 결정될 것이며 최대 격전지는 문화와 산업의 융합기술이 될 것이다“ 고 전망 했다

 

. 중국과 일본은 서복관련 논문 약 200편을 출원했으며 실크로드가 2013년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 된 것에 고무되어 서복의 행로를 추적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우리도 한민족의 기원과 정체성 및 고대 특이문화에 접근하여 고고학, 인류학,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망라하여 문화산업발전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에 본 기자 또한 작은 힘을 보탤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