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교 논설위원의] 권력의 비대화 이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2023.03.17 08:11:50

국민은 숫자를 줄이라는데 늘리자 하고
국민은 세비를 줄이라는데 늘리려 하고
국민에 대한 예의 염치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를 취하면 둘을 더 빼앗으려 하고 끝내는 열 개를 다 차지하려 한다. 강하다 강하다 하니 이젠 유권자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덤빈다. 약자를 더 약하게, 배고픈 자를 한없이 배고프게 만들어야 자신들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바로 정치꾼인가 보다.

 

당(黨)이라는 글자는, 정치꾼들이 모이면 항상 검은 마음이 들썩거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탐욕에 눈이 멀고 속임수에 능숙한 그들은 순진한 국민을 속여가며 자신들의 밥그릇을 더 크게 키우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 그들의 숫자를 줄이라 하는데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숫자를 더 늘리려 하고 있다. 국민이 바치는 세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또박또박 받아먹으면서, 하는 짓거리는 동네 양아치들만 못한 듯하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패거리는 더 늘려야 한다고 야단이다. 국민에 대한 예의염치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패거리가 늘면 유권자의 따가운 눈총이 작게 나누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은 그들이 쓰는 세비를 줄이라 하는데 그 잘난 사람들은 더 큰 폭으로 더 늘리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너무 많다고 외친다. 아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로 쌓여있다고 주장한다. 해야 할 일이란 것이 어쩌면 국민의 세금을 더 많이 삥뜯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배가 부르면 적당한 때 숟가락을 놓고 뒤로 물러앉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도무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허구한 날 숟가락 두들기며 ‘밥 좀 주소 밥 좀 주소’ 하면 누가 더 예뻐하고 누가 더 주려 할까? 국민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체, 더 많이 달라고 그들만의 밥솥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밥솥 깨지는 소리가 얼음 녹는 소리에 실려 저 너머에서 조용조용 들려오고 있다.

 

왜 그럴까? 선량한 국민이 어제도 속고 오늘도 속아 주니까 내일도 속여야겠다 하며 밀어붙이는 것은 아닐까? 정치꾼들은 군중의 힘은 언제나 그들보다 강하고, 다수의 능력은 언제나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선거철이 다가오면 겨우 알아차린다. 그리고 선거일만 지나고 나면 자신들의 힘이 더 세다고 다음 선거일까지는 착각 속에 갇혀 산다. 조변석개(朝變夕改), 표리부동(表裏不同)함의 전형이다.

 

국민은 항상 속아 주는 것이 의무인가? 권리를 의무라 착각하게 만든 사람들이 판정승을 거두고 있다. 국민은 남몰래 협박당하는 것이 취미인가? 협박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또한 한판승을 거두고 있다.

 

세상이 그러하기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꾼들이 사용하는 비용 총량과 권리를 1백 년 동안 동결시키는 것’이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함께 나누지 못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은 숫자를 늘리려 할까? 권력을 쪼개고 나누어 가지려 하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내 것이 줄어들거나 동결되는 것은 털끝만큼도 양보할 수 없다고 오히려 국민을 겁박하려 들것이다. 그들만의 파이가 줄어드는 꼴을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을까? 파이가 적어지면 그들은 어떻게 다툴까? 파이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 다툼이 생기지 않겠는가?

 

공평 분배하면 공평 만족이 있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항상 내 것은 모자라고 남의 것은 넘쳐 보인다. 바라보는 눈이나 욕심 가득한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적게 가진 내가 다른 사람의 넘치는 것 좀 가져왔다고 죄 될 일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인데 이를 어쩐다?

 

공평하게 나눈 것조차 내 것이 모자란다고 말하는데, 자기 것의 일부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분명 서로 간의 혈투가 생길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몫을 조금 더 가져오면 한순간은 부자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그 탐욕의 구덩이가 지나치게 커져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나누어도 허기짐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이다.

 

권력이 비대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움직임은 공룡의 느린 걸음을 닮아간다. 퇴적물이 쌓이면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면 혈액순환도 느려진다. 그러다 보면 좁아지고 막히고 종국에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굉음(轟音)을 울리며 달리는 폭주족들은 자신들만의 즐거움에 도취 된 채 빠르게 달린다. 과속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굉음에 놀란 사람들이 벌레 씹은 얼굴로 귀를 막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그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해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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