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교 작가의] 사랑고백에 죽는줄 알았다|

2023.02.22 23:15:09

 

 

며칠 전 찜질방을 다녀왔었다. 이곳은 이용권을 대량 구매 시 할인은 물론이고 덤으로 몇 장 더 주기도 한다. 열 사람이 모인 아주머니 부대가 들어왔다. 그중에서 리더 격인 한 사람이 추렴하여 50장을 구입하고 덤으로 2장을 더 받은 것 같다.

 

리더는 이용권을 받아들고 각자에게 나누어준 후 10매가 빈다며 매표소로 몰려가 부족매수를 채워달라 소란을 피운다. 종업원은 분명히 52장을 주었다 하고, 리더는 모자란다 항의가 심상치 않고 아주머니들의 기세가 사나웠다. 52장을 받아왔음에도 42장만 받았다고 착각하는 아주머니들, 30분 넘게 다투며 실갱이가 오갔다. 주변에서는 “단골로 오는 사람이니 무조건 더 주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든다.

 

한 참의 실갱이 후 종업원이 침착하게 말한다. ”제가 나누어 드린 이용권 모두 꺼내 보세요.’ 아주머니들은 들어오면서 제출한 1장을 제외하고 모두 꺼냈다. 세어 보니 모두 42장이 남아있었다. 10명이 1장씩 사용하였으므로 모두 52장을 받은 게 확실했다.

 

리더는 받은 자리에서 확인하지 않았고, 돌아와서 그냥 나누어준 실수를 인정하며 망신살이 뻗쳤다고 가슴친다. 어찌 이런 셈이 가능한가? 리더는 어느 한 사람에게 30장을 주고서 20장을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30장을 받은 그 아주머니도 리더가 20장이라 하면서 주었기에 20장이라 그냥 믿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누었으니 10장이 모자람은 당연하다. 30장을 쥐고 있던 아주머니는 정말 20장이라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30장을 받고서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20장이라 믿고 있으니 계속해서 20장이라 주장한 것일까?

 

종업원이 머릿수의 기세에 눌려 10장을 더 내놓았다면 본인은 10장을 공짜로 얻는 것이렷다. 눈물 찔끔거리던 종업원의 날벼락과 30여분 소란은 그렇게 헤프닝으로 끝이 났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주머니들의 셈법에서 이해보단 오해가, 배려보단 챙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회오리 지난뒤 입담이 오갔다. 주식 이야기를 필두로 설 명절 손자들의 재롱 이야기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의 신상을 줄줄줄 꿴다. 깨알같이 적어온 모양이다. 출연자들의 회당 출연료를 이야기하는 데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아주머니 한분은 “손자 녀석이 사랑 고백을 어찌나 해대는지 죽는 줄 았네”라고 했다. 설 명절 내내 내 곁에 붙어서 그리 고백을 했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애 엄마가 그렇게 하라 시킨 것 아냐”고 하자, ‘그건 아닌 것 같아. 전에는 내 옆에서 자다가도 지 엄마한테 가더니만 올해는 그냥 내 곁에서만 자더라니까’ 하면서 오지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청 행복했다고 말하면 될 터인데 왜 꼭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지...

 

또 다른 아주머니는 금 시세를 외며 지금 팔면 몇억이 남 네 어쩌네 하면서 큰소리쳤다. 주식 전문는 “작년에는 열에 아홉은 손해 보는 장이었다면 올해는 개미들이 돈 벌 수 있는 장이 선다, 외국인들이 대형주를 줍줍했다”고 침이 마르도록 외치며 은근한 자랑이다. “지금 내 말은 딸의 말이여, 그애 증권사 다니고 있잖아!”. 재테크의 수단이 부동산이 아님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종업원의 호출, “000님, 떼밀러 오세요”소리에 병아리가 어미 닭 품속을 벗어나듯 후다닥 줄줄이 뛰어 나선다. 웅성이던 화덕 주위가 조용하다. 사우나를 나서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밖에는 밤이 내리고 있었다.

 

송난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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