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엽 칼럼] 머리가 '둘'인 괴물

2023.02.19 21:19:26

성군(聖君)뒤에는 반드시 충신이 있었고 나라가 망할 때는 역신이 득세.

C종중의 중앙회장을 두 번씩 한 분이 있다, 그런데 하위 지파회장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을 신성한 조상 성지로 불러 선물과 거마비 봉투를 사비로 돌리며 종법을 무시하고 절차를 생략하고, 하자 없는 현 회장을 무법 해임 후, ”자신이 회장이라“ 나팔을 불어댔다. 그리고 다음 날 해고당한 회장은 정관규정과 절차에 의해 종법상 정수를 충족하여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면 몸통 하나에 머리 '둘'의 괴물이 되었는데  이조직은 어디로 가려는가! 또 이 사건을 세상은 어찌 볼것인가. 

 

처음이 아니다, 불과 4개월 전, 같은 인물이 임무수행 중인 하위조직 회장을 같은 이유로 극비밀리에 모사하여  총회에서 기습 허를 찔러 아무 하자 없는 회장을 몰아내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짤랐노라!“ 수많은 종인을 앞에 두고 조상의 묘소에서 나팔을 불어댔다. ”세상에 이런 일이,“ ’특필‘ 재료요 웃음거리인데 이 무도한 사건의 중심인물은 J회장이고 이 불법에는 동조한 종인들이 있다. 이 사건을 후손(역사)들은 또 어떻게 평 할까.

 

위대한 ’성군‘ 뒤에는 반드시 직언 충신이 있었다.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성군으로 꼽힌다. 정조의 위대함 뒤에는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욱' 하는 성질의 정종은 화나면 말이 거칠었다. 정조임금이 대신들과 군대를 거느리고 부친 사도세자 묘소를 참배 후 군사훈련를 지시했다. 이때 좌의정 ’김익‘이 “묘소는 신성하고 경건한 곳으로 군사 훈련은 안 된다” 아뢰니 정조가 오르는 화를 누르며 자존을 죽여 명을 거두었다.

 

그러나 궁으로 돌아온 정조는 화를 참지 못하고 김익의 아들 ’김재판‘을 불러 “네 아비는 충신이 되고 나는 폭군이 되었다”며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고 ’지수염필‘에 기록되어있다. 

 

하나 더, 효종이 창덕궁 후원에 작은 정자 하나를 지으려 했다. 이때 한 신하가 백성이 헐벗고 나라가 어려운데 정자는 안된다고 ’공개망신‘을 주었다. 효종은 역사가 두려워 사관과 승지를 물리치고 해당 신하를 몰래 불러 “네놈은 이름을 남겨서 좋겠으나 난 개망신 당했다."며 옷을 벗기고 곤장을 친 후 비밀에 부치라 겁박했다. 이를 우암 송시열이 알고 임금이 그럴 순 없다고 진언 나팔을 불었다. 성군에는 충신이 있었다.

 

문 정권 5년에 충신은 없었다 해서 정권을 내줬다. 윤석열 정부에 윤핵관이란 말이 나도는데 자신을 태울 충신은 있는가! 국가조직에서부터 가정에 이르기까지 충신과 충언이 필요하다. 조선이 흥 할 때는 사육신 같은 충신이 있었고 나라가 망 할 때는 간신이 득실거렸음을 역사는 기억한다. 

 

❋지수염필(智水拈筆) -조선 후기 홍한주<洪翰周> (1798년∼1868년)의 견문록, 수필 형식으로 기    록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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