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칼럼 연제#3] 민주주의보다 정치, 정치보다 인간

2023.02.14 05:39:02

민주주의자든 정치가든 인간이 못 됐다면 상종하지 않아야한다.
인간은 내가 누구이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유일한 피조물

  민주주의보다 정치가, 정치보다 인간이 더 넓은 세계다. 민주주의자든    정치가든 인간이 못 됐다면 상종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은 거      꾸로 이해될 때 참된 의미를 갖는다. 즉, 민주주의자도 정치적 이성을      존중해야 하며, 정치가의 실천이성 또한 인간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고 말이다.

 

  정치론 없는 민주주의는 편협하다. 인간론 없는 정치론은 세상을 널리    구제할 수 없다. 정치론은 인간론에 토대를 둘 때 강하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주제로 시작된다. 인간은 영문도 모르고 태어났지만 내가 누구이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목적 있는 삶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나 신념을 행위의 동기로 삼는 인간, 그런 인간이 부여잡은 것이 정치다. 따라서 목적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서 정치의 역할을 부여잡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일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보여주려 노력했듯, 정치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삶은 “외롭게 궁핍하고 냄새나고 게다가 짧기까지” 한, 죽음의 그림자를 벗을 수 없다.

 

누구도 정치가 작동할 수 없는 무(無) 국가 식민 상태나 난민의 삶, 무정부 상태에서의 시민 간 내전의 삶을 권할 수는 없다. 정치의 역할 없이 균형 잡힌 사회, 좋은 질서가 작동하는 사회(well-ordered society)를 만들 수도 없다.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을 구현하기 어렵다. 정치는 좋은 사회, 좋은 삶을 위해 인류가 찾아내고 발전시킨, 가장 도덕적이고 최고로 윤리적인 공동 행동이다.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책 『법의 정신』을 가리켜, 법리나 법체계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고찰하는 것에서 시작”한 책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면, 나로서는 정부가 있는 삶을 살게 해준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는 피통치자가 원하는 정부를 가질 수 있는 체제를 공화정 내지 “평등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둔 체제로 정의했다. 그 속에서 통치할 수 있으려면, 요즘 언어로 말하면 정부를 잘 운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법의 정신』은 다루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좋은 인간(political good man)”을 소망한다.

 

종교 윤리나 일반적인 사회윤리와는 다른,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의 “정치적 덕성(political virtue)”을 갖춘 정치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에게는 그저 좋은 인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더해 정치적으로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 그에 맞는 정치적 덕성과 능력, 책임성을 가져야 좋은 정부를 이끌 수 있다. 그래야 시민들 또한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이론은 인류 최초로 세습 군주와 귀족이 없는 공화정을 ‘헌법의 설계’를 통해 만든 미국에서 실천되었다. 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제임스 매디슨은 자신들이 한 일을 가리켜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에게 정부를 맡길 수 없다.”라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일로 설명했다. 정부는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통치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그 내부로부터 견제되어야 한다.

 

정부는 정부로되 피치자들로부터 적법한 동의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 뒤에도 정부의 자의적 권력 행사가 그 내부로부터 제한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을 만드는 기능과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기능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이 헌법제정회의가 열린 1787년 여름의 4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위원들 간의 상호 제안과 토론, 조정과 타협을 거쳐 이루어졌다. 인류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던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들의 정부를 만들 수 있었기에 미국은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章)을 채울 수 있었고, 미국인들은 정부가 있는 삶에 감사할 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자신들만의 정부를 만드는 데 실패했더라면, 그런 정부를 만든 정치가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상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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