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송란교의]잊는 것과 잃은 것

2023.02.12 20:32:51

잊어야 하는 것들을 잊지 못함은 집착이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잃어버림은 망각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잊은 추억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간직하고 키워야 할 꿈을 잊어버리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잃어버린 것

  뇌 속을 꽉 채운 쓸데없는 기억들, 비워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장      속 채운 숙변은 빨리 내보낼수록 건강에 좋다. 핸드폰에 저장된 각

  양각색의 정보 중에서 사용하지 않아 빨갛게 녹슨 것들이 수두룩

  하다. 몇 년 동안 안부 한 번 전해오지 않고 통화 한번 걸어보지 않    은 전화번호도 제법 수두룩하다. 핸드폰 단말기가 정상적으로 구동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저장 공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홀로 남은 부지깽이까지 모두 불태워버리면 나중에 무    엇으로 불을 다스릴 수 있으랴.

 

사람에 마음 쓰는 것도 그러하리라. 한 줌 그리움마저 절구통에 넣고 다 으깨어 버리면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우려는가. 외롭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며 온종일 두꺼운 돋보기를 걸치고 손바닥을 쳐다본다. 좁아진 눈 찡그려가며 핸드폰 자판기를 헤집는다. 그러는 사이 주름 한 가닥 늘어난다. 누렇게 뜬 얼굴을 요정이 날아다니는 액정에 처박고 연거푸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면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영혼마저 방전시키고 있다. 그렇게 익숙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머리를 들어 맑은 하늘 한 번 올려다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녹조에 뒤덮인 저수지는 얕은 밑바닥조차 바라볼 수 없다. 낡은 물을 아까워하며 비우지 못한다. 흐름이 막히니 새로운 물이 채워지지 않는다. 비워지지 않으면 채워질 일이 없다.

 

빛이 막히니 온통 먹통이 된다. 잊어야 하는 것들을 잊지 못함은 집착이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잃어버림은 망각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조차 잃어버린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서 잘 사용하고 있으면 내 것이라 돌려달라 할 수 있을까?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기억을 잊어버린 추억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내가 잘하는 것은 잊고 남들이 잘하는 것만 따라 하면서 부러워한다. 잔 따라 복이 가고 복 따라 술 온다고 계속 따라다닌다. 떠나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따라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따라오면 좋은 것도 있을 것이고 떠나가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투자자의 입장을 생각 해보면, 오늘의 저점이 내일의 고점이 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오늘의 고점이 내일의 저점이 되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같은 점, 같은 선을 두고도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왜일까? 좋은 기억이 넘치면 고마울 것이고 나쁜 기억이 많으면 싫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며 살아간다. 때론 자신의 마음도 훔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속이려 한다. 그러면서 시장이 주는 교훈을 잊어버린다. 시장이 가리키는 방향도 잃어버린다. 왜 그럴까? 잊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자산이라 하면 뜻이 명쾌해지는가? 

 

굽은 시렁에 매달린 것이 어디 매주 덩어리뿐일까? 곰팡이도 매달리고 한 숨소리도 매달리고 그리움도 매달린다. 그러다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시렁의 허리는 새우등처럼 구부정하게 된다. 일주문에 어디 법어만 걸리든가 놀란 마귀도 걸리고 바람난 마음도 걸린다.

 

한 송이가 피어나도 꽃은 꽃이요, 하룻밤을 자더라도 악연도 인연이로다. 세월이 가는 소릴 엿듣는다. 핸드폰 바꾸라고 속도가 늦어진다. 별똥이 떨어지는 속도로 배터리도 빠르게 닳아지고 있다. 이 빠진 양푼 냄비가 가을을 품은 단풍잎을 엉금엉금 갉아먹는다. 내 기억도 저렇게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뜯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송충이가 먹다 버린 단풍잎이라고 버리지 말자. 그러다간 아직 오지 않은 기억을 비릿한 추억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구멍 난 단풍잎을 무슨 전설로 채울까?

 

Forget(기억하지 못하다, 깨닫지 못하다, 느끼지 못하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다)과 Lose (물건 직장 등을 빼앗기다. 사라지다. 길 방향 초점을 잃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간직하고 키워야 할 꿈을 잊어버리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은 운명의 실타래를 한치의 어김도 없이 짱짱하게 꼬아야겠다.

송란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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