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박상훈의] 정치가다움에 관하여 

2023.02.11 22:37:09

이 글은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연구위원의 미래에서 보내는 편지로 '본지'에 보내온 내용임을 밝히며 내용이 우수하여 연재하고자 하며 오늘은 그 첫번째 내용이다.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이끌 정치가를 시민이 선출하고 그에게 일정

 기간 공적 사업의 책임을 맡기는 체제를 가리킨다. 정치가, 즉 선출   직 공직 후보자를 길러내는 역할은 정당이 한다. 정당 운영에 필요   한 경비의 상당 부분은 국고에서 지원하며, 정당 리더는 국가를 운   영하는 공동 책임자로 존중된다. 따라서 신뢰할만한 정당이 있는가

 존경받는 정치가가 있는가, 권위 있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는 질문

 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상태를 따져볼 수 있는 중심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정치의 실종’을 넘어 ‘정치가의 실종’을 걱정한다. 정치의 세계는 검사와 판사, 변호사 출신들이 각축하는 장이 되었다. 언론인 출신 의원들이 억지 싸움을 부추긴다. 그들도 조사와 처벌 같은 공안 언어를 즐겨 동원한다. 행정부 운영자는 물론이고 입법자들조차 고소와 고발을 남발한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법치가 들어섰다고 해야 할까. 법 집행을 둘러싼 공방이 어느덧 한국 민주주의를 집어삼켰다. 정치가 마땅히 해결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들은 국회 밖 거리로 내몰리고, 그에 비례해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있다.

법률가는 행해진 일을 다룬다.

정치가는 행해져야 할 일을 다룬다.

법률가의 시선이 과거 행해진 것들에 두어진다면,

정치가의 시선은 개선된 미래를 향해 있다.

 

이미 행해진 일에 법 조항을 적용하는 일과, 향후 행해져야 할 일을 위해 법을 만들고 정책을 논의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일은 같을 수가 없다. 처벌과 청산의 방법으로 정치를 다루면 어느 사회든 과거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이해했다고 해도 정치가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좋은 정치가가 되는 일은 언제든 어렵다.

1백 년 전,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가를 망치는 악마의 속삭임을 ‘남 탓하는 일’에서 찾았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 정치가에게서 듣게 되는 것은 개탄과 변명이다. 그들은 늘 “원인은 내가 아니라 세상의 비열함에 있다.”라는 알리바이에 의존한다. 역사 탓, 과거 탓, 여당 탓, 야당 탓은 그들이 즐겨 악용하는 소재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민중의 대표이자 호민관으로서의 당당함과는 거리가 먼, 사나운 표정과 공허한 내면뿐이다.

 

그래서 베버는 그런 정치가를 향해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또 해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인생이란 모든 가능성이 막혀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예비해 놓고 있는 놀라운 여행이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 동료 시민들에게 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 냉소주의와 허영심에 빠지지 않는 사람, 변화와 개선을 위해 나날이 진보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정치가가 된다. 그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비로소,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art of possibility)”이라고 정의했던 옛 성현들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박상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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